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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德壽宮, Deoksu Palace : 정동(貞洞), 대한문(大漢門), 중화전(中和殿), 중화문(中化門), 준명당(浚眀堂), 석어당(昔御堂), 덕홍전(德弘殿), 함녕전(咸寧殿), 정관헌(靜觀軒), 중명전(重明殿), ..

by 서구원 2023. 6. 17.

덕수궁, 德壽宮, Deoksu Palace : 정동(貞洞), 대한문(大漢門), 중화전(中和殿), 중화문(中化門), 준명당(浚眀堂), 석어당(昔御堂), 덕홍전(德弘殿), 함녕전(咸寧殿), 정관헌(靜觀軒), 중명전(重明殿), 석조전(石造殿),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덕수궁, 德壽宮, Deoksu Palace : 정동(貞洞), 대한문, 중화전, 중화문, 준명당, 석어당, 덕홍전, 함녕전, 정관헌, 중명전, 석조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덕수궁(德壽宮, Deoksu Palace)은 서울 중구 정동(貞洞)에 있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로 대한민국 사적 제124호이다. 본래 조선시대 세조가 남편을 잃은 맏며느리 수빈 한씨(인수대비)의 개인 사저로 마련된 곳으로, 한씨의 차남 자산군이 궁궐에 들어가자 장남인 월산대군이 물려받았다.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월산대군의 집을 임시 왕의 거처로 사용하면서 궁(宮)이 되었고, 1608년 선조가 죽은 뒤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 후, 창덕궁으로 떠나면서 경운궁(慶運宮)이라는 궁호를 붙여주었다. 1623년 인조가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1897년 고종이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거처하다가 이 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국가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도 증축을 지속하여 장대한 전각들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1904년 큰 화재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며 이듬해에 다시 중건되었으며, 1906년 대안문(大安門)이 수리된 뒤 대한문(大漢門)으로 개칭하게 됐다. 1907년 순종이 즉위 후 창덕궁으로 떠나면서 아버지인 고종에게 장수를 빌며 궁호를 경운궁에서 '덕이 높고 오래 산다'라는 뜻의 덕수궁으로 개명하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1910년(융희 4) 석조전(石造殿) 등 서양식 건물이 준공되었으며, 1912년 종로에서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직선도로인 태평로(현 세종대로)를 만들면서 총독부가 동쪽 궁벽과 궐내각사 건물도 허물었으며, 대한문도 당시의 위치에서 뒤로 옮겨졌다. 1919년에는 덕수궁에서 머물던 태황제 고종의 사망 이후 덕수궁은 궁궐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고종 승하 후 1920년 미국공사관과 덕수궁 사이에 덕수궁길이 만들어졌으며, 1912년에 양이재 등 수학원 영역을 임대한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 해당 영역을 매입하였고, 이왕직과 총독부는 필지를 분할하여 1922년에는 의효전 자리에 경성제일고등여학교를, 1923년에는 맞은편에 경성여자공립보통학교(현 덕수초등학교)를 건립하였다. 1926년는 창덕궁에서 순종이 사망 후 구세군이 필지를 매입하였고, 1931년 덕수궁 공원 계획이 추진되어, 1933년 9월 덕수궁을 일반에 공개하고, 석조전 서측에 나카무라 요시헤이의 설계로 이왕가미술관 건물을 1938년 6월 5일에 개관하였다. 

 

현재의 덕수궁은 정문인 대한문, 정전인 중화전과 중화문, 침전인 함녕전과 편전인 덕흥전과 동·서·남 행각 및 당시의 함녕전 정문이었던 광명문, 준명당·즉조당, 덕수궁 내에서는 유일한 2층 건물인 석어당, 정관헌·석조전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1902년 건립된 중화전(中和殿)은 덕수궁의 정전(正殿)으로 보물 819호이며 본래 중층이었으나 1904년 화재로 1906년에 단층으로 다시 지었다. 중화문(中化門)은 중화전과 같은 양식의 다포계 팔작지붕이다. 중화문 앞에는 원래 덕수궁의 정문이었던 인화문(仁化門)이 있었다.   1897년에 새로 지은 내전(內殿)의 하나인 준명당(浚眀堂)은 1904년의 화재로 다시 지어졌다. 1592년 선조 26년 창건된 석어당(昔御堂)은 궁전에 지어진 건물 중 전각을 제외한 유일한 이층 건물로 1904년(광무 8년) 화재 후 중건되었다. 함녕전 서쪽에 1911년 건립된 덕홍전(德弘殿)은 덕수궁 내 현존 전각 중 가장 나중에 건조된 전각으로 내외 귀빈이 황제를 알현하던 건물이다.  1897년 건립된 함녕전(咸寧殿)은 고종이 거처하던 침전(寢殿)으로 보물 제820호로 지정된 목조건물로 정문은 광명문(光明門)이다. 1900년 경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관헌(靜觀軒)은 고종이 다과를 들고 외교사절단을 맞아 연회를 여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서양식 정자이다. 대한제국 말기에 건축된 석조전(石造殿)은 총세무사 브라운의 권유로 영국 사람 하딩(J. R. Harding)이 설계하고 심의석(한국인), 사바틴(러시아인), 오가와(일본인), 데이비슨(영국인) 등이 감독으로 1900년 기공하여 1909년 준공한 그리스 건축 조형(祖型)의 르네상스 양식을 가미한 콜로니얼 스타일(식민지 양식)의 3층 석조 건물이다. 석조전 서관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일제강점기에 이왕가미술관으로 건축되어, 1973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의 본관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으로 이전하면서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으로 정식 개관하였다. 개관 당시 덕수궁미술관으로 불리었으나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서면서 덕수궁관으로 개명하였다. 중명전(重明殿)은 덕수궁에 딸린 서양식 전각으로 원래의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으나, 1904년 경운궁 화재 이후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중명전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05년 11월 18일 새벽, '을사늑약'이 체결된 곳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Deoksugung

 

Deoksugung - Wikipedia

Palace of Korean empire, first established by Joseon in 1593 Royal architecture in the Deoksu Palace. Seokjojeon and western style garden of the Palace. It was designed by British architect John Reginald Harding. Deoksugung, also known as Gyeongun-gung, 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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